티벳인들이 잘 씻지 않는 이유

티벳에 들어오는 이들은 모두 아파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티벳의 환경을 척박하다고 합니다. 고산병은 기본이고, 건조한 날씨와 빠르게 변하는 기온은 사람들의 삶을 크게 바꿔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티벳사람들은 일 년에 한번, 설 명절에나 목욕을 할 만큼 잘 씻지 않아 고사목과 같은 느낌을 주곤 한다네요. 건조한 날씨 탓에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피부의 기름기를 닦아낼 경우 피부가 트기 쉽고, 그렇게 되면 가벼운 충격에도 살이 찢어지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평소에 씻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할 경우 버터 정도로 몸을 닦아내는 수준이라네요.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았다고 쉽게 다른 문화의 금기나 생활방식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 준 책이 대학시절 읽은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화의 수수께끼는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였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서야 왜 인도에서는 소를 먹지 않고 숭배하는 금기가 생겨났고, 이슬람교도들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든 소가 있으면 농사를 지을 때 생산력이 올라가기 때문에 소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농경민족의 자연스러운 풍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도 정조시대의 기록을 보면, 정조의 친위부대였던 장용영 병사들에게 수원지역의 땅을 주고, 2가구당 한마리의 소를 배정했더니, 농업 생산력이 전국 평균을 크게 앞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이 귀한 소를 쉽게 잡지 않았고, 또 잡을 때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먹는 풍습이 만들어 집니다.

때문에, 갈비집이 임금의 왕릉주위에 있었던 이유도 설명이 되는데, 소를 잡아 제사지내는 유일한 곳이기에 소고기의 공급이 유일한 곳이라 갈비집이 유명해 진 것이고, 설렁탕도 소를 한마리를 그대로 넣어 최대한 국물을 많이 만들어 나누어 먹기 위해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이렇게 귀하게 먹을 수 있었을 소고기를 인도에서 금기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도의 몬순기후 때문에 만들어진 금기라 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기온이 온화하고 땅이 기름져 풍족했던 인도이지만 북부지역의 인도는 불규칙한 몬순기후로 장기간 가뭄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기후 때문에 많은 이들이 굶어죽는 사태가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굶어죽지 않기 위해 소를 잡아먹는 일이 허다했는데, 이 경우 문제는 생산력이 회복불능의 상황으로 떨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됩니다.

즉, 소라도 있으면 가뭄 후에 다시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것이 가능했으나, 잡아 먹고 나면 농업생산력의 기반 자체가 모두 무너져 버리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죠. 결국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 힌두교의 소 숭배이고, 소의 도살을 방지하는 금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돼지는 이슬람교에서 왜 금지할까요?

돼지고기를 최고의 고기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워낙 좋아하는데, 몇년 전 이슬람인들이 같이 섞여 사는 회족 지역에 갔었는데, 돼지고기가 워낙 맛있으니까, 종교적 금기가 있음에도 몰래몰래 먹는 이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돼지는 생각보다 무척 기르기 어려운 동물이라고 합니다. 우선 돼지는 온도가 29도가 넘어가면 체온 조절을 위해 자신의 배설물을 몸에 바르는 등의 행동을 하는데, 때문에 돼지는 늘 습한 상황에서 세심하게 보살펴 줘야 합니다. 게다가 돼지가 먹는 곡물의 양은 사람이 먹는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밀림에서는 모르겠습니다만, 사막 지역에서 이런 돼지를 유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발생합니다. 결국 이렇게 과도하게 비용이 들어가는 동물의 경우 아예 금기로 올려서 소비를 금하는 선택을 한 것이죠.

금기나 풍습에는 결국 그 지역과 민족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것은 그렇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결국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by 제이한 | 2009/01/26 17:14 | 트랙백(1) | 핑백(1) | 덧글(38)

세네카가 이야기한 과학연구의 태도

살아가는 동안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판단에 의해서 선택을 하게 되고, 하루에도 그러한 선택은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어떤 것은 욕망에 의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필요에 의해서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 사람들은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도덕적인 문제의식에 대해 어려서 부터 교육을 받습니다. 때로는 종교적인 신앙의 문제에 의해서 가치를 판단하기도 합니다. 토론의 토대가 비슷하다면, 사실 갈등은 존재하지만, 쉬울 수도 있습니다. 사고방식이 비슷하다면 토론을 통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러한 공감대속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면 되니까요.

이러한 공감대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과학은 하나의 방법론인데, '왜 그런 것이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여러 주장들에 대해서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절차를 반복하면서 판단을 하는 방법입니다. 과학적인 태도는 비교적 오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는 현대사회에서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가끔, 과학은 끊임없이 진보하여 우리가 불가능이라 여기는 영역(예를 들면 불사의 생명같은)까지 이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태도도 있으나, 이러한 것은 과학을 또 하나의 컬트로 만들어 버리는 태도입니다. 과학에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겠죠.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에 태어나 기원후 65년에 죽은 정치가이자, 철학자요, 시인입니다. 로마가 황제의 시대로 넘어가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팍스 로마나 시기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스토아 사상을 계승하여,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글을 많이 남긴 사람입니다.



하지만, 황제 클라우디스의 어린 조카 율리아 클라우디스와 관계를 가져, 당시 로마의 최대 스캔들을 일으킵니다. 말과는 좀 달랐다고나 할까요? ^^

어린 네로 황제를 가르친 것이 인연이 되어, 네로 황제를 도와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를 초기에는 펼칩니다. 그러나 네로가 폭정을 일삼자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결국 모든 공직에서 물러납니다. 이후 연구와 저술에 힘쓰다가 음모론에 말리고 네로가 자살을 명하자 결국은 독배를 마시고 자살을 합니다. 일종의 덕을 중시하는 로마 철학자나 귀족의 명예 자살이라고 봐야겠죠.

세네카가 지은 책 중에 <자연학의 문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로, 이 글은 칼 세이건이 지은 <코스모스>의 머릿말에도 실렸습니다. 칼 세이건도 세네카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큰 동감을 표시한 것이겠죠. 세네카가 정리한 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태도에 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이 여러 세대에 걸쳐 부지런히 연구를 계속한다면, 지금은 짙은 암흑속에 감춰져 있는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거기에 빛이 비쳐 그 안에 숨어 있는 진리의 실상이 밖으로 드러나게 될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애로는 부족하다. 누가 자신의 일생을 하늘을 연구하는데만 온통 바친다고 하더라도, 우주와 같은 엄청난 주제를 다루기에 한 사람의 일생은 너무 짧고 부족하다. 진리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서서히 밝혀지게 마련이다.

우리 먼 후손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주 뻔한 것들조차 우리가 모르고 있었음을 의아해 할 것이다. 수 없이 많은 발견이 먼 미래에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결국 우리에 대한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끊임없이 연구해서 밝혀야 할 그 무엇을 우주가 무궁무진으로 품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우리 우주가 혹시라도 그러한 우주라면, 우리는 그것을 한낱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존재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의 신비는 단 한번에 한꺼번에 밝혀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from <자연학의 문제>에서...


죽을 때까지 우주에 대해서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과학의 성과와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던 칼 세이건도 이러한 사명감과 태도를 가지고 한걸음씩 걸어갔겠죠.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by 제이한 | 2008/09/16 17:28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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