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16일
세네카가 이야기한 과학연구의 태도
살아가는 동안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판단에 의해서 선택을 하게 되고, 하루에도 그러한 선택은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어떤 것은 욕망에 의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필요에 의해서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 사람들은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도덕적인 문제의식에 대해 어려서 부터 교육을 받습니다. 때로는 종교적인 신앙의 문제에 의해서 가치를 판단하기도 합니다. 토론의 토대가 비슷하다면, 사실 갈등은 존재하지만, 쉬울 수도 있습니다. 사고방식이 비슷하다면 토론을 통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러한 공감대속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면 되니까요.
이러한 공감대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과학은 하나의 방법론인데, '왜 그런 것이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여러 주장들에 대해서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절차를 반복하면서 판단을 하는 방법입니다. 과학적인 태도는 비교적 오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는 현대사회에서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가끔, 과학은 끊임없이 진보하여 우리가 불가능이라 여기는 영역(예를 들면 불사의 생명같은)까지 이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태도도 있으나, 이러한 것은 과학을 또 하나의 컬트로 만들어 버리는 태도입니다. 과학에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겠죠.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에 태어나 기원후 65년에 죽은 정치가이자, 철학자요, 시인입니다. 로마가 황제의 시대로 넘어가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팍스 로마나 시기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스토아 사상을 계승하여,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글을 많이 남긴 사람입니다.

하지만, 황제 클라우디스의 어린 조카 율리아 클라우디스와 관계를 가져, 당시 로마의 최대 스캔들을 일으킵니다. 말과는 좀 달랐다고나 할까요? ^^
어린 네로 황제를 가르친 것이 인연이 되어, 네로 황제를 도와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를 초기에는 펼칩니다. 그러나 네로가 폭정을 일삼자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결국 모든 공직에서 물러납니다. 이후 연구와 저술에 힘쓰다가 음모론에 말리고 네로가 자살을 명하자 결국은 독배를 마시고 자살을 합니다. 일종의 덕을 중시하는 로마 철학자나 귀족의 명예 자살이라고 봐야겠죠.
세네카가 지은 책 중에 <자연학의 문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로, 이 글은 칼 세이건이 지은 <코스모스>의 머릿말에도 실렸습니다. 칼 세이건도 세네카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큰 동감을 표시한 것이겠죠. 세네카가 정리한 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태도에 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이 여러 세대에 걸쳐 부지런히 연구를 계속한다면, 지금은 짙은 암흑속에 감춰져 있는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거기에 빛이 비쳐 그 안에 숨어 있는 진리의 실상이 밖으로 드러나게 될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애로는 부족하다. 누가 자신의 일생을 하늘을 연구하는데만 온통 바친다고 하더라도, 우주와 같은 엄청난 주제를 다루기에 한 사람의 일생은 너무 짧고 부족하다. 진리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서서히 밝혀지게 마련이다.
우리 먼 후손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주 뻔한 것들조차 우리가 모르고 있었음을 의아해 할 것이다. 수 없이 많은 발견이 먼 미래에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결국 우리에 대한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끊임없이 연구해서 밝혀야 할 그 무엇을 우주가 무궁무진으로 품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우리 우주가 혹시라도 그러한 우주라면, 우리는 그것을 한낱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존재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의 신비는 단 한번에 한꺼번에 밝혀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from <자연학의 문제>에서...
죽을 때까지 우주에 대해서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과학의 성과와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던 칼 세이건도 이러한 사명감과 태도를 가지고 한걸음씩 걸어갔겠죠.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것은 욕망에 의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필요에 의해서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 사람들은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도덕적인 문제의식에 대해 어려서 부터 교육을 받습니다. 때로는 종교적인 신앙의 문제에 의해서 가치를 판단하기도 합니다. 토론의 토대가 비슷하다면, 사실 갈등은 존재하지만, 쉬울 수도 있습니다. 사고방식이 비슷하다면 토론을 통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러한 공감대속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면 되니까요.
이러한 공감대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과학은 하나의 방법론인데, '왜 그런 것이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여러 주장들에 대해서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절차를 반복하면서 판단을 하는 방법입니다. 과학적인 태도는 비교적 오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는 현대사회에서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가끔, 과학은 끊임없이 진보하여 우리가 불가능이라 여기는 영역(예를 들면 불사의 생명같은)까지 이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태도도 있으나, 이러한 것은 과학을 또 하나의 컬트로 만들어 버리는 태도입니다. 과학에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겠죠.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에 태어나 기원후 65년에 죽은 정치가이자, 철학자요, 시인입니다. 로마가 황제의 시대로 넘어가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팍스 로마나 시기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스토아 사상을 계승하여,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글을 많이 남긴 사람입니다.

하지만, 황제 클라우디스의 어린 조카 율리아 클라우디스와 관계를 가져, 당시 로마의 최대 스캔들을 일으킵니다. 말과는 좀 달랐다고나 할까요? ^^
어린 네로 황제를 가르친 것이 인연이 되어, 네로 황제를 도와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를 초기에는 펼칩니다. 그러나 네로가 폭정을 일삼자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결국 모든 공직에서 물러납니다. 이후 연구와 저술에 힘쓰다가 음모론에 말리고 네로가 자살을 명하자 결국은 독배를 마시고 자살을 합니다. 일종의 덕을 중시하는 로마 철학자나 귀족의 명예 자살이라고 봐야겠죠.
세네카가 지은 책 중에 <자연학의 문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로, 이 글은 칼 세이건이 지은 <코스모스>의 머릿말에도 실렸습니다. 칼 세이건도 세네카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큰 동감을 표시한 것이겠죠. 세네카가 정리한 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태도에 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이 여러 세대에 걸쳐 부지런히 연구를 계속한다면, 지금은 짙은 암흑속에 감춰져 있는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거기에 빛이 비쳐 그 안에 숨어 있는 진리의 실상이 밖으로 드러나게 될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애로는 부족하다. 누가 자신의 일생을 하늘을 연구하는데만 온통 바친다고 하더라도, 우주와 같은 엄청난 주제를 다루기에 한 사람의 일생은 너무 짧고 부족하다. 진리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서서히 밝혀지게 마련이다.
우리 먼 후손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주 뻔한 것들조차 우리가 모르고 있었음을 의아해 할 것이다. 수 없이 많은 발견이 먼 미래에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결국 우리에 대한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끊임없이 연구해서 밝혀야 할 그 무엇을 우주가 무궁무진으로 품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우리 우주가 혹시라도 그러한 우주라면, 우리는 그것을 한낱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존재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의 신비는 단 한번에 한꺼번에 밝혀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from <자연학의 문제>에서...
죽을 때까지 우주에 대해서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과학의 성과와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던 칼 세이건도 이러한 사명감과 태도를 가지고 한걸음씩 걸어갔겠죠.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by | 2008/09/16 17:28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결국 사람들이 한 세대를 초월하여 이어지는 미지를 향한 끝없는 앎에 대한 갈망
이 '대의'라고 불리는 본능이 있기에 인간은 지구상의 여타 동물들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진보할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성에서 살 수 있을 날이 머지 않은듯 합니다. ^^